108. 정인이라 불러주게
秋月은 선생님의 시에는 영겁과 찰나, 죽음과 삶, 흥망과 성쇠가 모두 달려 있어서 마치 우주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듯 한 느낌이 든다면서
이왕 붓을 드셨으니 끝까지 써 달라고 한다. 김삿갓은 天地萬物之逆旅라는 시의 연속이라면서 다시 써내려 간다.
하늘과 땅 사이에 큰 집을 한 채 지었으니
지황씨와 천황씨가 주인 남녀로다
헌원씨는 터를 닦아 뜰과 거리를 넓혔고
여와씨는 돌을 갈아 주춧돌을 높였도다.
其中遂開一大廈
地皇天皇主男女
分區軒帝廣庭街
鍊石皇媧高柱礎
길 가던 노인들이 한푼 두푼 보태 준 빚은
명월과 청풍으로 모두 갚았건만
노파가 날마다 극락을 쓸고 닦는 동안
뽕나무 밭이 세 번이나 바다로 변했네.
行人一錢化翁債
明月淸風相受與
天台老嫗掃席待
大抵三看桑海都
우산에 해 저물어 길손은 제나라에 자고
신기루 가을바람에 초나라를 지나간다.
저 멀리 선경에서 새벽 닭소리 들려오니
다함없는 나그네 길엔 너와 내가 없도다.
牛山落日客宿齊
蜃樓秋風人過楚
扶桑玉鷄第一聲
漂漂其行無我汝
牛山은 牛眠山 즉 명당을 뜻하고, 扶桑은 전설 속의 선경을 말한다. 김삿갓은 여기까지 쓰고 붓을 던지며 추월을 향하여 “
이 시는 나의 우주관을 솔직히 고백한 시일세. 이 시에 대한 자네 소감은 어떤가?”하고 물었다.
추월은 벅찬 감격에 사로잡힌 듯 “우주의 복잡다단한 현상을 이처럼 간결하고 섬세하게 그려 주신 글이 거듭 놀랍기만 하옵니다.
저는 이제야 말로 참 스승을 만나 뵈온 듯 기쁘옵니다.”하고 대답한다.
김삿갓은 다시 술을 몇 잔 기울이고 나서 “이 사람아 자네는 언제까지 나를 스승이라고만 불으려나. 이왕이면 ‘情人’이라고 한번 불러주게.”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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