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김삿갓(105) 江界에서 맞은 섣달그믐

수돌이. 2016. 8. 23. 17:04

 

105, 강계에서 맞은 섣달그믐


한 겨울 江界의 추위는 살을 에는 듯 맹렬했다. 눈은 오는 대로 쌓이고 모진 바람은 날이 갈수록 기승을 부렸다. 이 추위에 秋月의 보살핌이 아니었던들 김삿갓은 어찌 되었을까. 어쩐 복인지 따뜻한 방에서 술을 마시며 추월의 거문고소리를 듣기도 하고, 시를 읊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꿈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어느덧 섣달그믐의 밤이다. 추월은 조촐한 술상을 보아 가지고 들어와서 '오늘은 잠을 자서는 안 되는 날이라고 하니 모든 시름 다 떨쳐 버리고 술이나 마음껏 드시라' 고 했다. 그래서 술이 거나해진 김삿갓은 빈 잔을 추월에게 건네고, 자기고향 선배이기도 한 桂田 申應朝의 <除夜>라는 시를 목청을 돋워 읊어 본다.


술 많이 마신다고 어줍게 생각 말게

내일 아침이면 내 나이 일흔 살일세

좋은 청춘 꿈결 같이 헛되이 보내고

지금은 부질없는 백발만 남았다네.

莫怪今多把酒頻

明朝七十歲華新

夢中猶作靑年事

世上空留白髮身


추월은 가냘픈 미소를 지으며 ‘선생님은 칠십이 되시려면 아직도 멀었사옵니다. 오늘이 그믐날 밤이라서 고향이 그리워 그런 시를 읊으신 것 같사온데 매우 외람되오나 제가 자작시 한 수를 거문고에 실어 선생님의 시름을 달래드리겠사옵니다.’하더니 즉석에서 거문고를 타며 다음과 같은 시를 한 수 읊어 주는 것이었다.


이 해가 저무는 밤 나그네 잠 못 들고

형님 생각 아우 생각 심사가 처량하다

등잔불 가물가물 시름 참기 어려워

거문고 껴안고 가는 해를 보내노라.

歲暮寒窓客不眠

思兄憶弟意凄然

孤燈欲滅愁歎歇

泣抱朱絃餞舊年


추월의 거문고 솜씨도 대단했지만 시를 그렇게 잘 지을 줄은 미처 몰랐다. 김삿갓이 '자네 시는 許蘭雪軒이 무색할 지경이라' 고 칭찬을 하자 추월은 과찬의 말씀이라고 수줍어하면서 제가 외람되이 먼저 시를 지은 것은 선생님의 손수 지으신 시를 듣고 싶어서였으니 이제는 선생님의 자작시를 들려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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