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試問何人始起樓
김삿갓은 관북으로 들어선지 열흘 만에 駕鶴樓라는 유명한 정자에 도달하였다. 安邊고을의 鎭山은 鶴城山이다. 가학루는 학성산 동쪽 언덕 위에 동해를 멀리 굽어보며 날아갈 듯이 솟아 있는 정자다.
가학루의 도리에는 시인묵객들이 남겨 놓은 수많은 詩가 현판으로 걸려 있었다. 김삿갓은 고려조의 충신이었던 鄭夢周의 시에 유난히 시선이 끌렸다.
묻노니 이 다락 누가 세웠던고
내 이제 다락에 올라 오래 머무노라
십 년 세월 헛되이 모든 일 잊었다가
옛 싸움터 바라보니 눈물이 절로 솟네.
試問何人始起樓
臨登聊復爲淹留
十年徒勞負心事
白戰山河堪淚流
정몽주는 만고의 충신인지라 옛날의 싸움터만 보아도 나라의 장래가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옆에는 조선조의 개국공신이었던 鄭道傳의 시가 걸려 있는데 그 시의 내용은 정몽주의 그 것과는 지극히 대조적이었다.
영의정께서 가학루에 오르시어
보고 느끼신 시를 현판에 남기셨다
강산이 아무리 좋아도 내 땅은 아니니
세월만 덧없이 물 따라 흘러가네.
上相登臨駕鶴樓
眼前詩句壁間留
江山信美非吾土
歲月無情逐水流
정도전이 정몽주의 시를 읽고서 지은 것인지? 上相(영의정)이라는 칭호가 정몽주를 지칭한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시의 내용으로 보아 정몽주는 자나 깨나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고 있었고, 정도전은<강산이 아무리 좋아도 내 땅은 아니라>고 한 것을 보면 그는 진작부터 새 나라를 일으킬 야망을 품고 있었던 듯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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