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안진사 댁을 떠나며
안진사 댁에서 보낸 한 겨울은 무척 푸근했다. 어느 때는 연못가에서 개구리소리를 들으며 무념무상의 경지에 잠기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창가에 기대앉아 달을 바라보며 한밤을 지새우기도 했으며, 언젠가는 소나기 퍼붓는 광경을 바라보며 풍류시를 읊기도 했다.
방초 푸른 늪에서는 개구리소리 요란하고
손님 없는 문전에는 시골길 한가롭다
소나기 퍼붓는 비바람에 대나무 흔들리고
물고기 날뛰는 물보라에 연잎이 번득인다.
斑苔碧草亂鳴蛙
客斷門前村路斜
山雨驟來風動竹
澤魚跳躍水飜荷
시를 읊는 창가에는 달빛이 가득하고
버들 가린 골목은 안개로 자옥하다
홀아비 하룻밤에 좋은 경치 다 보고 나니
붉은 얼굴 어디 가고 백발만 남았구나.
閑吟朗月松窓滿
淡抹靑烟柳巷遮
鰥老一宵淸景飽
顔朱換却髥皤皤
늙고 병든 몸 아직도 수척하지만 깊은 겨울 다 지나고 이제는 봄이 왔으니 김삿갓은 어디론가 다시 떠나야 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작별시 한 수로서 안진사에게 떠날 결심을 알렸다.
먼 나그네 오랫동안 병을 빙자하여
댁에 폐를 끼치며 봄을 맞게 되었소.
봄이 와서 동서로 뿔뿔이 헤어지면
이 곳 꽃구경은 다른 사람 몫이오.
遠客悠悠任病身
君家蒙恩且逢春
春來各自東西去
此地看花是別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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