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구두래 나루의 酒母 娟月
구두래 나루터에는 퇴물임 늙은 기생이 낸 작은 술집이 이었다. 말이 통하는 여인이었다. 젊어서 늙은 정인을 하나 만났는데 그가 죽은 후 혼자 산다기에 그토록 의리를 지키는 사유를 물었더니 "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사내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인은 자기를 기쁘게 해 주는 사람을 위해 얼굴을 가꾼다)"이라는 옛말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것은 중국 역사 豫讓傳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자네는 그런 책도 다 읽었는가? 그러면 이런 시도 알겠네그려.”하고 김삿갓은 다음과 같은 시를 읊으면서 공술 얻어먹을 생각을 했다.
죽은 뒤에 돈을 하늘까지 쌓아도
살아생전에 술 한 잔만도 못하니라.
身後堆金柱北斗
不如生前一盃酒
연월은 "세상사는 석자 거문고요, 인생은 한잔 술이라.(世事琴三尺 人生酒一盃)"라는 시도 있는데 오늘 풍류남아를 만났으니 어찌 아니 마시겠느냐 면서 조촐한 술상을 차려 내왔다. 김삿갓은 원래 두주불사하는 주호였지만 연월 역시 그에 못지않은 주량이었다.
창밖으로는 유유히 흘러가는 강가에 송아지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풍경이 하도 좋아서
백마강 가에서 누런 송아지가 울고 있네.
白馬江頭黃犢鳴
한 마디 중얼거렸더니 주모도 맞은 편 노인산에서 소년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노인산 밑으로 소년이 걸어가오.
老人山下少年行
하고 대뜸 대를 놓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이 白과 黃을 대조적으로 표현한 데 대하여 주모는 老와 少를 대조시킨 절묘한 화답이었다. 그것도 거침없이 응구첩대를 하는 것으로 보아 그의 시재가 비범함을 알게 했다. 그래서 김삿갓은 뜰에 있는 연못을 내다보며
연못 속의 부용은 물이 깊어서 보이질 않네.
澤裡芙蓉深不見
하고 읊어 보았다. 그러자 주모는 즉석에서 복사나무를 내다보며
뜰에 있는 복사꽃은 웃어도 소리가 없소.
園中桃李笑無聲
하고 또 다시 멋들어진 대를 놓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이 <부용꽃>이라고 한데 대해<복사꽃>으로 대를 놓고, <물이 깊어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 대해서는 <웃어도 소리가 없다> 고 대를 놓았으니 모두가 격에 어울리는 대구였던 것이다.
김삿갓은 연월을 보고 아마도 月자 이름을 가진 여인들은 시를 잘하는가 보다고 했다. 예전 송도 기생 明月이(황진이), 평양기생 桂月이 이름 난 시인이었는데 여기오기 전에 강계에서 만난 秋月이도 시를 잘 하더니 이제 또 娟月이 시를 잘하는 것을 놀랍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연월은 나를 어찌 감히 명월이나 계월에게 비하겠느냐면서 강계에서는 언제 떠났느냐고 묻는다. 김삿갓은 대답 대신에
정초에 집을 떠났는데 어느새 삼월이 되었네.
離家正初今三月
하고 읊었더니 주모는
손님을 초저녁에 만났는데 어느새 삼경이오.
對客初更復三更
하고 화답을 보낸다. 김삿갓은 이에 마음이 몹시 동요되어
이 밤의 흥겨움을 무엇으로 비기리요.
良宵可興比難於
하고 유혹의 시를 한마디 던졌더니 연월은 대뜸 이렇게 화답하는 것이 아닌가.
자오산에 떠 있는 달이 한창 밝으옵니다.
紫午山頭月正明
그 화답에는 김삿갓의 유혹을 언제든지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김삿갓은 艶福도 많았었나보다. 그래서 그토록 긴 세월의 방랑을 계속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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