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을 밀 대
그 날도 김삿갓은 혼자 乙密臺에 올랐다. 錦繡山 위의 평탄한 곳에 자리한 을밀대에는 四虛亭이라는 정자가 있어서 을밀대를 일명 사허정이라고도 부른다는 것이다. 하고많은 이름 중에 왜 하필이면 정자 이름을 사허정이라고 했을까?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을밀대는 동서남북이 모두 탁 틔어 있어서 사허정이라는 이름이 가장 적합한 듯싶었다. 하늘로 날아올라갈 듯이 네 활개를 활짝 펴고 있는 사허정의 雄姿를 노래한 당나라 어느 시인의 시 한수가 걸려 있다.
금수산 머리에
손바닥처럼 평평한 대가 있네.
모름지기 하늘에 사는 신선이
바람 타고 때때로 놀러 오는 곳이리.
錦繡山上頭
一臺平和掌
恐有天上仙
乘風時來往
때마침 정자 위에서는 굉장한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평양갑부라는 임진사의 회갑잔치라고 했다. 김삿갓은 여러 날 술을 굶어 출출하던 판인지라 마침 잘 되었다싶었다. 정자 위에는 올라가지도 못하고 그 아래에서 술 한 잔 얻어먹은 그는 그래도 그대로 물러서기가 미안해서 祝詩 한 수를 즉석에서 다음과 같이 써내려갔다.
저 멀리 강포 풍경 아름다워라
고운 모래가 십리나 이어져 있네.
그 모래알 낱낱이 모두 주어다놓고
양친부모 그만큼 수를 누리게 하소서.
可憐江浦望
明沙十里連
令人個個拾
其數父母年
아무 생각도 없이 모래사장을 바라보다가 한 순간에 즉흥적으로 써 갈긴 것이다.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어느 선비가 하도 놀라워 감탄하여 마지않으니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글도 좋지만 글씨 또한 명필이라고 법석을 떨며 다투어 보려하자 드디어 정자 위로 올려져 임진사 앞에 놓였다.
시를 좋아하는 임진사는 詩書가 무두 비범함을 알고 그를 정자 위로 모시게 하여 "나는 林光得이란 사람이요" 하고 정중히 인사를 한다. 그러니 노인의 인사를 받고 자기이름을 밝히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할 수 없이 "소생은 金笠이라 하옵니다"하고 대답했다.
임진사는 퍽 놀라워하면서 방랑시인으로 유명하신 삿갓선생을 내 일생 한 번 뵙기 소원이었는데 내 환갑날에 스스로 와 주셨으니 이렇게 광영일 수가 있느냐면서 자손들을 불러 인사를 올리게 하는 등 임진사 환갑잔치의 분위기는 갑자기 김삿갓환영연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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