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김삿갓(95) 牡丹峰

수돌이. 2016. 8. 23. 16:48

 

95. 모 란 봉


대동강의 경치가 좋아 시흥이 도도했던 것도 잠시, 나룻배에서 내린 그를 반겨줄 곳이 만무하여 구차한 하룻밤을 보낸 김삿갓이 다음날 牡丹峰에 올랐다.

평양북쪽에 있는 높이 96m, 평양의 鎭山인 錦繡山과 그 줄기에 있는 乙密臺와도 연결되는 경승지여서 꿈에 그리던 평양의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을 곳이기 때문이었다.

저 멀리 눈 아래 비단 폭처럼 넘실거리는 것이 대동강, 그 위에 절벽을 이루며 우뚝 솟은 산이 금수산, 강 건너 수양버들이 실실이 우거진 섬은 綾羅島, 그 옆으로 半月島, 羊角島 등등의 작은 섬들이 점점이 河中島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를 자고로 금수강산이라 불러오고 있는 것도 이 평양의 금수산에서 나온 말일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김삿갓은 대동강을 내려다보며 이곳을 먼저 지났던 옛 선비들의 시들을 치레로 머리에 떠 올려 본다.


대동강 아가씨들 봄놀이 즐기려니

수양버들 실실이 늘어져 마음 애달고

가느다란 버들 실로 비단을 짠다면

고운님을 위해 춤옷을 지으리라.

浿江兒女踏春陽

江上垂楊正斷腸

無限烟絲若可織

爲君裁作舞衣裳 이는 풍류시인 白湖 林悌의 浿江歌요,


금수라는 비단 산이 이미 있는데

능라라는 비단 섬을 또 보노라

조선 사람들은 그 이상 사치를 경계하려고

일부러 하얀 옷을 입는가 보다.

旣有錦繡山

更見綾羅島

東人戒驕誇

衣裳多素縞 이는 당나라 사신 史道의 노래이다,


날이 저물어오자 강 위에 떠 있는 놀잇배에서는 등불들이 하나 둘 꽃처럼 피어오른다.

그것은 마치 꿈나라의 환상인 것만 같아 김삿갓은 불현듯 白樂天의 시를 연상하였다.


꿈같은 세상에 봄이 찾아오니

허황한 인생이 물거품 같구나.

오만가지 시름을 모두 없애려거든

술 이외에 또 무엇을 구하랴.

幻世春來夢

浮生水上漚

百憂中莫入

一醉外何求


그러나 오늘도 김삿갓에게는 술도 없고 잠자리도 없지 않는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좌우간 인가근처로 내려가 봐야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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