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김삿갓(54) 吉州吉州不吉州

수돌이. 2016. 8. 22. 16:58

 

54. 吉州吉州不吉州


북쪽으로 올라올수록 인심이 사나워서 吉州 사람들은 낮 선 사람을 좀처럼 재워주려 하지 않았다. 이 고을에서 제법 잘 산다는 許富者집을 찾아 가 보았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고 말았다. 오랑캐들의 침략을 자주 받아 온 탓으로 인심이 그렇게 모질어 진 모양이었다. 저물어 가는 하늘을 우러러 보며 한바탕 너털웃음을 웃고 난 김삿갓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고을 이름을 길주라 하건만 길한 고을이 아니고

성씨를 허가라고 하건만 허락 해 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구나.

吉州吉州不吉州

許可許可不許可


할 수 없이 김삿갓은 明川으로 발길을 돌렸다. 명천은 생선이 많이 잡히는 곳이니 명천에 가면 생선만은 잘 얻어먹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명천에 들어서니 아무리 밥을 얻어먹어도 생선 같은 것은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김삿갓은 명천 고을에 대해서도 이렇게 비꼬아 주었다.


명천 명천 하지만 사람은 밝지 못하고

어전 어전 하지만 어느 집 밥상에도 생선은 없다.

明川明川不明川

漁佃漁佃食無魚


길주 명천을 총총히 떠난 김삿갓은 함경도의 북단인 鏡城으로 발길을 돌렸다. 경성은 자고로 북방을 지키던 역사가 많은 곳이지만 鏡城 名妓 洪娘과 咸鏡評事를지낸 孤竹 崔慶昌과의 애정비화가 숨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최경창이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떠나 올 제 咸關嶺까지 배응 나온 홍랑은 버들가지하나를 꺾어 올리며 다음과 같은 시조를 읊었고. 孤竹은 즉석에서 그 시조를 한시로 옮기었다.


묏버들 가려 꺾어 임의 손에 보내노니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나거든 나인 줄로 여기소서.

折柳寄與千里人

爲我試種門庭前

須知一夜新生葉

憔悴愁眉是妾身


사랑하는 여인이 읊어 준 시조를 즉석에서 한시로 옮겨 놓았다는 것은 얼마나 운치있는 일인가. 그 후 홍랑은 임진왜란 때 戰死한 최경창의 무덤 옆에서 3년 동안 守墓를 했을 뿐 아니라, 그가 남겨 놓은 詩集을 항상 품속에 지녔던 덕택에 三唐詩人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던 최경창의 주옥같은 시가 兵禍를 면하고 세상에 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충절에 감동하여 최씨문중에서는 홍랑이 죽은 후에 그의 시신을 최경창의 무덤 옆에 묻어 주었고, 4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파주 교하에 신분을 초월한 사랑의 전설을 간직한 채, 꿈에 그리던 님과 나란히 잠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