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김삿갓(53) 詩仙과 酒仙의 만남

수돌이. 2016. 8. 22. 16:56

53. 詩仙과 酒仙의 만남

咸關嶺을 넘은 김삿갓은 洪原고을에서 말술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吳初試영감을 만났다. 이름을 聖甫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그를 성보라고 부르지 않고 酒甫라고 불렀다. 학식도 웬만한 그였지만 어느 술자리에서 김삿갓에게 도리어 웬 술을 그리도 좋아하느냐? 고 묻는다. 김삿갓은 대답대신에 李太白의 시 한 구절을 읊었다.


하늘이 만약 술을 좋아하지 않으면

주성이라는 별이 어찌 하늘에 있으며

땅이 만약 술을 좋아하지 않으면

땅에 주천이라는 샘은 없었을 것이오.

天若不愛酒

酒星不在天

地若不愛酒

地應無酒泉


자기 자신은 하늘과 땅의 섭리에 순응하여 인생을 술로써 즐겁게 살아 오노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吳初試영감님은 깊이 고개를 끄덕여 공감을 표하는 듯 하더니 잠시 후에는 다음과 같은 자작시 한 수를 읊어 보이는 것이었다.


어느덧 칠십, 나도 이제는 죽을 나이

뼈를 묻을 산이야 어딘들 없으리오.

바라건대 옹기전의 흙 속에 묻혔다가

술독이 되고 싶소, 술잔이 되고 싶소.

七十我當死

到處有靑山

願埋陶廛土

爲甕亦爲盃


김삿갓은 그 시를 듣고 오노인의 철두철미한 애주정신에 머리가 절로 수그러졌다. 酒仙이 따로 있는가? 사람이 죽은 뒤에는 명당에 뭍이고 싶은 것이 모두의 욕망이건만, 오노인은 죽은 후에 술독이나 술잔이 되고 싶다니 그 얼마나 술을 사랑한다는 증거인가. 참된 酒仙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에 이른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