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設宴逐客非人事
오늘도 토굴신세를 면 치 못할 것으로 알았던 김삿갓은 고개 너머 김참봉댁의 회갑잔치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지만 거지행색의 그를 그 집 청지기는 문간에서 내쫓으려 했다. 할 수 없이 김삿갓은 시를 한 수 휘갈겨서 주인에게 전하라 하고 뒤 돌아 나오고 있었다.
잔치를 벌이고서 손님을 쫓는 것은 인사가 아니니
주인의 인사가 사람답지 못하구나.
設宴逐客非人事
主人人事難爲人
글줄이나 읽은 김참봉은 청지기로부터 시를 받아 보고 항간에 온갖 소문이 떠도는 김삿갓이 자기 집에 온 것임을 직감으로 느꼈다. 그래서 황급히 내려가 결례를 사과하고 노인들이 모인 자리로 안내하여 주효를 대접한 후에 시 한 수를 청했다.
이윽고 김삿갓은 붓을 들어 일필휘지하는데 필적은 장강유수와 같이 활달했으나 그 내용은 너무도 놀라운 것이어서 좌중은 물론, 김창봉과 그의 아들 칠형제가 경악하다 못해 분노의 빛을 노골적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저기 앉아 있는 저 노인은 사람 같지가 안네
彼坐老人不似人
그러나 김삿갓은 이를 아랑곳 하지 않고 태연자약한 태도로 다음구절을 써 내려 간다.
혹여 하늘에서 내려오신 신선이 아니신지?
疑是天上降神仙
두 번째 구절을 보고 난 노인들은 모두 제 각기 감탄을 마지않는다. 起句를 보고서 지극히 모욕감을 느꼈던 김참봉도 承句를 보고서는 일약 신선으로 둔갑한 바람에 입이 찢어지도록 기뻐했다.
그러나 김삿갓은 주변의 일희일비를 아는 체 아니하고 轉句를 다음과 같이 써 갈긴다.
슬하의 일곱 아들은 모두가 도둑놈
膝下七子皆爲盜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을 모조리 도둑놈으로 몰았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모처럼 환희에 넘쳤던 분위기가 또다시 송두리째 뒤집히고 말았다. 모두가 불안스런 눈초리로 다음 結句를 어떻게 맺는가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하늘에서 봉숭아를 훔쳐다가 수연을 올리는구나.
偸得天桃獻壽宴
*하늘에만 있는 이 천도복숭아를 먹으면 2천년을 산다는 전설이 있음.
김삿갓이 마지막 구절을 휘갈기고 붓을 던지자 좌중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 사람 같지 않다던 노인은 신선이 되고, 도둑놈이라던 아들들은 모두 효자가 되었으니 김삿갓의 글재주야 말로 천변만화를 자유자재로 하는 神技라 아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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