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不知汝姓不知名
釋王寺에서 아직도 천진난만한 천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半月行者와 작별한 김삿갓은 기나긴 오솔길을 홀로 걸어오다가 별안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좁다란 오솔길 위에 시체 하나가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세히 보니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어도 썩어가는 시체에는 파리 떼가 득실거리고 있었다. 시체 옆에는 쌀이 조금 들어 있는 뒤웅박과 지팡이 하나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시체의 주인공은 거지임에 틀림없었다.
김삿갓은 눈앞의 시체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세상인심이 야박도 하지, 시체가 썩어 가는 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지는 않았을 터인데 흙 한줌 끼얹어 줄 인심도 없었더란 말인가? 김삿갓은 두루마기를 벗어부치고 시체를 오목한 곳으로 끌어다 놓고 연장도 없이 손으로 흙을 모아 조그만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제사를 지내 주어야 하겠는데 젯메를 마련할 수가 없으니 시 한 수로 대신할 밖에 없었다. 김삿갓은 무덤 앞에 머리 숙여 다음과 같은 시를 소리 내어 읊었다.
성도 이름도 모르는 그대여
어느 곳 청산이 그대 고향이던고.
아침나절엔 썩은 몸에 파리가 들끓더니
헤질 녘에는 까마귀가 고혼을 불러 울어 주네.
不知汝姓不知名
何處靑山子故鄕
蠅侵腐肉喧朝日
烏喚孤魂弔夕陽
한 자 막대기 그대의 유물이요
몇 되 남은 쌀은 구걸한 양식인가
앞마을 사람들아 내 말 좀 들어보소.
흙 한 줌 날라다가 풍상이나 가려 주게.
一尺短笻身後物
數升殘米乞時糧
寄語前村諸子輩
携來一簣掩風霜
제사를 지내 주고 나니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날은 자꾸만 저물어 오는데 아무리가도 인가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늘 밤도 토굴신세를 져야 한단 말인가. 비록 토굴 속에 자는 한이 있더라도 거지의 시체를 매장해 준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 인정이라도 없다면 인생을 무슨 보람으로 살아간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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