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笠(김삿갓) 詩모음
1思鄕 [사향] - “고향 생각”
西行己過十三州 [서행기과십삼주] 서쪽으로 이미 열세 고을을 지나왔건만
此地猶然惜去留 [차지유연석거유] 이곳에서는 떠나기 아쉬워 머뭇거리네.
雨雪家鄕人五夜 [우운가향인오야] 아득한 고향을 한밤중에 생각하니
山河逆旅世千秋 [산하역려세천추] 천지 산하가 천추의 나그네길일세.
莫將悲慨談靑史 [막장비개담청사] 지난 역사를 이야기하며 비분강개하지 마세.
須向英豪問白頭 [수향영호문백두] 영웅호걸들도 다 백발이 되었네.
玉館孤燈應送歲 [옥관고등응송세] 여관의 외로운 등불 아래서 또 한 해를 보내며
夢中能作故園遊 [몽중능작고원유] 꿈속에서나 고향 동산에 노닐어 보네.
2
贈妓 [증기] - “기생에게 지어 주다”
却把難同調 [각파난동조] 처음 만났을 때는 어울리기 어렵더니
還爲一席親 [환위일석친] 이제는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었네.
酒仙交市隱 [주선교시은] 주선(酒仙)이 시은(市隱)과 사귀는데
女俠是文人 [여협시문인] 이 여협객은 문장가일세.
太半衿期合 [태반금기합] 정을 통하려는 뜻이 거의 합해지자
成三意態新 [성삼의태신] 달그림자까지 합해서 세 모습이 새로워라.
相携東郭月 [상휴동곽월] 서로 손 잡고 달빛 따라 동쪽 성곽을 거닐다가
醉倒落梅春 [취도락매춘] 매화꽃 떨어지듯 취해서 쓰러지네.
○ 주선(酒仙)은 술을 즐기는 김삿갓 자신.
○ 시은(市隱)은 도회지에 살면서도 은자같이 지내는 사람.
이백(李白)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에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이라고 하여 달, 자신, 자신의 그림자가 모여 셋이 되었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 시는 술을 좋아하는 시객(詩客-김삿갓)이 아름다운 기녀와 대작을 하며 시로 화답하면서 봄밤의 취흥을 즐기는 풍류시이다.
3
街上初見 [가상초견] - “길가에서 처음 보고”
芭經一帙誦分明 [파경일질송분명] 그대가 시경 한 책을 줄줄 외우니
客駐程驂忽有情 [객주정참홀유정] 나그네가 길 멈추고 사랑스런 맘 일어나네.
虛閣夜深人不識 [허각야심인불식] 빈 집에 밤 깊으면 사람들도 모를테니
半輪殘月已三更 [반륜잔월이삼경] 삼경쯤 되면 반달이 지게 될 것이요.
-金笠詩 [김립 시]
難掩長程十目明 [난엄장정십목명]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 눈 가리기 어려우니
有情無語似無情 [유정무어사무정] 마음 있어도 말 못해 마음이 없는 것 같소.
踰墻穿壁非難事 [유장천벽비난사] 담 넘고 벽 뚫어 들어오기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曾與農夫誓不更 [증여농부서불경] 내 이미 농부와 불경이부 다짐했다오.
- 女人詩 [여인 시]
김삿갓이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여인들이 논을 메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미인이 시경을 줄줄 외우고 있어서 김삿갓이 앞 구절을 지어 그의 마음을 떠 보았다.
그러자 여인이 뒷 구절을 지어 남편과 다짐한 불경이부(不更二夫)의 맹세를 저 버릴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4
老牛 [노우] -“늙은 소”
瘦骨稜稜滿禿毛 [수골릉릉만독모] 파리한 뼈는 앙상하고 털마저 빠졌는데
傍隨老馬兩分槽 [방수노마양분조] 늙은 말 따라서 마굿간을 같이 쓰네.
役車荒野前功遠 [역거황야전공원] 거친 들판에서 짐수레 끌던 옛 공은 멀어지고
牧竪靑山舊夢高 [목수청산구몽고] 목동 따라 푸른 들에서 놀던 그 시절 꿈 같아라.
健耦常疎閑臥圃 [건우상소한와포] 힘차게 끌던 쟁기도 텃밭에 한가히 놓였는데
苦鞭長閱倦登皐 [고편장열권등고] 채찍 맞으며 언덕길 오르던 그 시절 괴로웠었지.
可憐明月深深夜 [가련명월심심야] 가련해라 밝은 달밤은 깊어만 가는데
回憶平生滿積勞 [회억평생만적노] 한평생 부질없이 쌓인 고생을 돌이켜보네.
세월의 무상함은 인간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늙은 소를 보고서도 세월이 앗아간 전날의 혈기 넘쳤던 때를 생각할 수 있다.
5
難避花 [난피화] -“피하기 어려운 꽃”
靑春抱妓千金開 [청춘포기천금개] 청춘에 기생을 안으니 천금이 초개같고
白日當樽萬事空 [백일당준만사공] 대낮에 술잔을 대하니 만사가 부질없네.
鴻飛遠天易隨水 [홍비원천이수수] 먼 하늘 날아가는 기러기는 물 따라 날기 쉽고
蝶過靑山難避花 [접과청산난피화] 청산을 지나가는 나비는 꽃을 피하기 어렵네.
김삿갓이 어느 마을을 지나가는데 청년들이 기생들과 놀고 있었는데 김삿갓이 이를 부러워하여 한자리에 끼어 술을 얻어 마신 뒤 이 시를 지어 주었다.
6
妓生合作 [기생합작] - “기생과 함께 짓다”
金笠(김립) : 平壤妓生何所能 [평양기생하소능] 평양 기생은 무엇에 능한가.
妓生(기생) : 能歌能舞又詩能 [능가능무우시능] 노래와 춤 다 능한 데다 시까지도 능하다오.
金笠(김립) : 能能其中別無能 [능능기중별무능] 능하고 능하다지만 별로 능한 것 없네.
妓生(기생) : 月夜三更呼夫能 [월야삼경호부능] 달 밝은 한밤중에 지아비 부르는 소리에 더 능하다오.
평양감사가 잔치를 벌이면서 능할 능(能)자 운을 부르자 김삿갓이 먼저 한 구절을 짓고 기생이 이에 화답하였다.
7
樂民樓 [낙민루] -“낙민루”
宣化堂上宣火黨 [선화당상선화당] 선정을 펴야 할 선화당에서 화적 같은 정치를 펴니
樂民樓下落民淚 [낙민루하낙민루] 낙민루 아래에서 백성들이 눈물 흘리네.
咸鏡道民咸驚逃 [함경도민함경도] 함경도 백성들이 다 놀라 달아나니
趙岐泳家兆豈永 [조기영가조기영] 조기영의 집안이 어찌 오래 가랴.
※ 관찰사가 집무 보는 관아를 선화당이라고 하는데, 구절마다 동음이의어를 써서 함경도 관찰사 조기영의 학정을 풍자했다.
○ 宣化堂 : 선정을 베푸는 집. 宣火黨 : 화적 같은 도둑떼
○ 樂民樓 : 백성들이 즐거운 집. 落民淚 : 백성들이 눈물 흘리다
○ 咸鏡道 : 함경도. 咸驚逃 : 모두 놀라 달아나다
○ 趙岐泳 : 조기영. 兆豈永 : 어찌 오래 가겠는가
8
難貧 [난빈] -“가난이 죄”
地上有仙仙見富 [지상유선선견부] 지상에 신선이 있으니 부자가 신선일세.
人間無罪罪有貧 [인간무죄죄유빈] 인간에겐 죄가 없으니 가난이 죄일세.
莫道貧富別有種 [막도빈부별유종] 가난뱅이와 부자가 따로 있다고 말하지 말게나.
貧者還富富還貧 [막도빈부별유종] 가난뱅이도 부자 되고 부자도 가난해진다오.
9
逢雨宿村家 [봉우숙촌가]
曲木爲椽簷着塵 [곡목위연첨착진] 서까래는 굽고 처마는 땅에 닿고
其間如斗僅容身 [기간여두근용신] 방은 좁고 좁아 겨우 몸을 넣었네.
平生不欲長腰屈 [평생불욕장요굴] 허리 굽히기를 평생 싫어했건만
此夜難謀一脚伸 [차야난모일각신] 이 밤만은 다리조차 펼 수가 없구나.
鼠穴烟通渾似漆 [서혈연통혼사칠] 쥐구멍 연기로 방안은 칠흑 같은데
蓬窓茅隔亦無晨 [봉창모격역무신] 창문마저 어두워 새벽을 모르겠소.
雖然兎得衣冠濕 [수연면득의관습] 그래도 비를 피해 옷을 안 적셨기에
臨別慇懃謝主人 [임별은근사주인] 떠나는 인사만은 정중히 드리오.
○ 椽 ; 서까래 연 ○ 僅 ; 겨우 근 ○ 蓬 ; 쑥 봉 ○ 慇 ; 괴로워할 은 ○ 懃 ; 은근할 근
김삿갓이 길을 가다가 이번에는 단칸방 오두막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었다. 아들을 셋이나 두었지만 모두 중이 되어 나가고 두 늙은이만 살고 있다는 이 집은 세 사람이 들어앉기도 비좁은 방이지만 주인 내외는 기꺼이 쉬어 갈 것을 허락한다. 고마운 마음에 허리를 굽히고 방으로 들어 왔지만 처마 끝에 부딪쳐 이마에 혹이 달렸고 지금은 다리를 꼬부리고 누웠지만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평소 남에게 허리를 구부리기 실어하는 그였지만 오늘 밤은 방이 하도 좁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익살맞은 시 한 수를 읊조리며 오랫동안 궁싯거리다가 그런 대로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눈을 떠보니 주인은 밖에 나가고 할머니가 부엌에서 아침을 짓는지 쥐구멍으로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쑥대와 띠풀로 엮은 창문은 아침 햇살이 비쳤는데도 어둡기만 하였다. 그래도 할머니가 아침상을 내왔는데 비록 꽁보리밥이지만 할아버지가 일찍 나가 따온 호박으로 국을 끓이고 감자찌개까지 올라있었다.
※ 어느 시골집에서 비를 피하며 지은 것으로 궁벽한 촌가의 정경과 선비로서의 기개가 엿보이는 시이다. 누추하지만 나그네에게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베풀어 준 주인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하면서 세속에 굽히지 않으려는 의지를 볼 수 있다.
10
艱飮野店 [간음야점] - “주막에서”
千里行裝付一柯 [천리행장부일가] 천릿길을 지팡이 하나에 맡겼으니
餘錢七葉尙云多 [여전칠엽상운다] 남은 엽전 일곱 푼도 오히려 많아라.
囊中戒爾深深在 [낭중계이심심재] 주머니 속 깊이 있으라고 다짐했건만
野店斜陽見酒何 [야점사양견주하] 석양 주막에서 술을 보았으니 내 어찌하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떠돌아다니는 나그네 길, 어쩌다 생긴 엽전 일곱 닢이 전부지만 저녁놀이 붉게 타는 어스름에 술 한 잔으로 허기를 채우며
피곤한 몸을 쉬어가는 나그네의 모습이 애달프다.
11失題 [실제] - “제목을 잃어버린 시”
許多韻字何呼覓 [허다운자하호멱] 수많은 운자 가운데 하필이면 '멱'자를 부르나.
彼覓有難況此覓 [피멱유난황차멱] 그 '멱'자도 어려웠는데 또 '멱'자를 부르다니.
一夜宿寢懸於覓 [일야숙침현어멱] 하룻밤 잠자리가 '멱'자에 달려 있는데
山村訓長但知覓 [산촌훈장단지멱] 산골 훈장은 오직 '멱'자만 아네.
김삿갓이 어느 산골 서당에 가서 하룻밤 재워 달라고 하니 훈장이 시를 지으면 재워 주겠다고 하면서 시를 짓기 어려운 '멱'(覓)자 운을 네 번이나 불렀다.
이에 훈장을 풍자하며 재치있게 네 구절 다 읊었다.
12
宿農家 [숙농가] -“농가에서 자다”
終日緣溪不見人 [종일연계불견인] 골짜기 따라 종일 가도 사람을 못 보다가
幸尋斗屋半江濱 [행심두옥반강빈] 다행히도 오두막집을 강가에서 찾았네.
門塗女와元年紙 [문도여와원년지] 문을 바른 종이는 여와 시절 그대로고
房掃天皇甲子塵 [방소천황갑자진] 방을 쓸었더니 천황씨 갑자년 먼지일세.
光黑器皿虞陶出 [광흑기명우도출] 거무튀튀한 그릇들은 순임금이 구워냈고
色紅麥飯漢倉陳 [색홍맥반한창진] 불그레한 보리밥은 한나라 창고에서 묵은 것일세.
平明謝主登前途 [평명사주등전도] 날이 밝아 주인에게 사례하고 길을 나섰지만
若思經宵口味幸 [약사경소구미행] 지난밤 겪은 일을 생각하면 입맛이 쓰구나.
○ 여와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천지를 만들었다는 인물,
○ 천황씨는 전설에 나오는 고대 중국 임금.
13
卽吟 [즉음] -“즉흥적으로 읊다”
坐似枯禪反愧髥 [좌사고선반괴염] 내 앉은 모습이 선승 같으니 수염이 부끄러운데
風流今夜不多兼 [풍류금야부다겸] 오늘 밤에는 풍류도 겸하지 못했네.
燈魂寂寞家千里 [등혼적막가천리] 등불 적막하고 고향집은 천리인데
月事肅條客一簷 [월사숙조객일첨] 달빛마저 쓸쓸해 나그네 혼자 처마를 보네.
紙貴淸詩歸板粉 [지귀청시귀판분] 종이도 귀해 분판에 시 한 수 써놓고
肴貧濁酒用盤鹽 [효빈탁주용반염] 소금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 마시네.
瓊琚亦是黃金販 [경거역시황금판] 요즘은 시도 돈 받고 파는 세상이니
莫作於陵意太廉 [막작어릉의태염] 오릉땅 진중자의 청렴만을 내세우지는 않으리라.
○ 진중자(陳仲子)는 제나라 오릉(於陵)에 살았던 청렴한 선비.
14“自顧偶吟 [자고우음] - 나를 돌아보며 우연히 짓다”
笑仰蒼穹坐可超 [소앙창궁좌가초] 푸른 하늘 웃으며 쳐다보니 마음이 편안하건만
回思世路更迢迢 [회사세로경초초] 세상길 돌이켜 생각하면 다시금 아득해지네.
居貧每受家人謫 [거빈매수가인적] 가난하게 산다고 집사람에게 핀잔 받고
亂飮多逢市女嘲 [난음다봉시녀조] 제멋대로 술 마신다고 시중 여인들에게 놀림 받네.
萬事付看花散日 [만사부간화산일] 세상만사를 흩어지는 꽃같이 여기고
一生占得月明宵 [일생점득월명소] 일생을 밝은 달과 벗하여 살자고 했지.
也應身業斯而已 [야응신업사이이] 내게 주어진 팔자가 이것뿐이니
漸覺靑雲分外遙 [점각청운분외요] 청운이 분수밖에 있음을 차츰 깨닫겠네
15可憐妓詩 [가련기시] -“기생 가련에게”
可憐行色可憐身 [가련행색가련신]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몸이
可憐門前訪可憐 [가련문전방가련] 가련의 문 앞에 가련을 찾아왔네.
可憐此意傳可憐 [가련차의전가련] 가련한 이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면
可憐能知可憐心 [가련능지가련심] 가련이는 이 가련한 마음을 알아주겠지.
김삿갓은 함경도 단천에서 한 선비의 호의로 서당을 차리고 3년여를 머무는데 가련은 이 때 만난 기생의 딸이다. 그의 나이 스물 셋.
힘든 방랑길에서 모처럼 갖게 되는 안정된 생활과 아름다운 젊은 여인과의 사랑...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의 방랑벽은 막을 수 없었으니 다시 삿갓을 쓰고 정처없는 나그네 길을 떠난다.
16
離別 [이별] - “이별”
可憐門前別可憐 [가련문전별가련] 가련의 문 앞에서 가련과 이별하려니
可憐行客尤可憐 [가련행객우가련] 가련한 나그네의 행색이 더욱 가련하구나.
可憐莫惜可憐去 [가련막석가련거] 가련아, 가련한 이 몸 떠나감을 슬퍼하지 말라.
可憐不忘歸可憐 [가련불망귀가련] 가련을 잊지 않고 가련에게 다시 오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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