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적벽강에서 최후를
김삿갓이 和順 同福으로 申錫愚 선비를 찾아 왔을 때는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울정도로 극도로 쇠약해 있었다. 50고개를 바라보는 시골 선비 신석우는 안진사의 소개편지를 받아 보고 김삿갓을 무척 측은히 여기며 별채까지 내주면서 푹 쉬기를 권했다.
그러나 김삿갓은 다음 날 아침 赤壁江을 가보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주인이 만류하다 못해 직접 모시고 가겠다고 했으나 김삿갓은 조용히 구경하고 싶다며 아무 방해도 받지 않도록 작은 배 한 척만 혼자 탈 수 있도록 구해 달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나루터까지만 같이 와서 혼자 배를 타게 해 줄 수밖에 없었다. 물 위에 둥둥 떠도는 작은 배는 노를 젓지 않아도 물 흐름을 따라 조금씩 아래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蘇東坡의 赤壁賦라는 글에 보면
"맑은 바람은 서서히 불어오고(淸風徐來), 물결은 일어나지 않아(水波不興), 망망한 물 위로 떠가노라면(凌萬頃之茫然), 마치 바람을 타고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 같다.(浩浩乎如憑虛御風)"는 말이 나오거니와 지금 김삿갓은 그 옛날 소동파가 적벽강에서 누렸던 즐거움을 그대로 누리고 있는 것이다.
점점 몽롱해 오는 의식 속에서 문득 ‘歸天’이라는 말이 머리에 떠올랐고 귀천이라는 말은 말할 것도 없이 죽는다는 말이지만 김삿갓은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돌이켜 보면 기구하기 짝이 없는 50평생이었다. 그러기에 혼미한 의식 속에서 자신의 생애를 회고하며 삶을 마감하는 마지막 시를 읊어 나가기 시작했다.
날짐승도 길짐승도 제 집이 있건만
나는 한평생 혼자 슬프게 살아왔노라.
鳥棲獸巢皆有居
顧我平生獨自傷
짚신에 지팡이 끌고 천리 길 떠돌며
물처럼 구름처럼 가는 곳이 내 집이었다.
芒鞋竹杖路千里
水性雲心家中方
사람도 하늘도 원망할 일이 못 되어
해마다 해가 저물면 혼자 슬퍼했네.
尤人不可怨天難
歲暮悲懷餘寸腸
어려서는 이른바 넉넉한 집안에 태어나
한강 북녘 이름 있는 고향에서 자랐노라
初年有謂得樂地
漢北知吾生長鄕
조상은 부귀영화 누려왔던 사람들
장안에서도 이름 높던 가문이었다.
簪纓先世富貴門
花柳長安名勝生
이웃 사람들 생남했다 축하해 주며
언젠가는 출세하리라 기대했건만
隣人來賀弄璋慶
早晩歸期冠蓋場
자랄수록 운명이 자꾸만 기구하여
오래잖아 상전이 벽해처럼 변했소.
鬢毛稍長命漸奇
小劫殘門飜海桑
의지할 친척 없고 인심도 각박한데
부모마저 돌아가셔 집안은 망했도다.
依無親戚世情薄
曲盡爺孃家事荒
김삿갓의 마지막 시는 언제 끝을 내려는지 그칠 줄 모르고 거침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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