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방랑기.,竹香 後편
평양에 와 임진사 회갑연에 참석하게 된., 김삿갓 평소 김삿갓 시재를 흠모했다는.,평양부자 임진사. 임진사는 처음 만난 김삿갓을 붙잡고 극진하게 예우.
林進士의 환대와 竹香의 보살핌 속에 김삿갓이 평양 죽향 집에 머무는 동안 꿈같은 나날이 덧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죽향이 6살때 헤어진 아버지를 찾아준 김삿갓 죽향의 부친상을 도와준 김삿갓이 머문.,죽향의 집. 대동강 풍경이 한눈에 바라보이는.,아담한 집이었다.
김삿갓에게 보은 하겠다며 한사코 놓아주지 않는 죽향.
김삿갓에게는 처음 맛보는 황홀한 날들이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그곳에 머물러 있을 수 만은 없었다. 한사코 붙잡는 임진사에게도 작별을 고하고 떠나는 길.
김삿갓을 대동강 나루터까지 전송 나온.,竹香. 김삿갓은 차마 배에 못오르고 죽향을 바라보는데 죽향이 눈물 어린 시선으로 배웅을 하며 시를 읊는다.
大同江上別情人 楊柳千絲未繫人 含淚眼看含淚眼 斷腸人對斷腸人 대동강에서 정든 님과 헤어지는데 천만가지 실버들로도 잡아매지 못하오. 눈물 어린 눈으로 눈물 젖은 눈을 바라보니 임도 애타는가 나도 애간장이 끊어질듯 하오.
김삿갓도 죽향에게 못다한 속정을 시로 화답. 대동강을 바라보며 애틋한 속마음을 드러내듯..
翠禽暖戱對浮沈 晴景闌珊也未收 人遠漫愁山北立 路長惟見水東流
푸른새는 강물에서 정답게 노닐고 난간에서 바라보니 풍경은 아름답건만 임을 보내는 시름은 북쪽 산에 어리고 멀리 떠나는 길., 강물은 동쪽으로 흐르네.
垂楊多在鶯啼驛 芳草無邊客依樓 怊悵送君自崖返 那堪落月下汀洲
꾀꼴새는 버드나무 숲에서 울어 대는데 나는 다락에 기대어 풀밭 만 바라보노라 그대를 보내고나서 나 혼자 언덕에 남으면 달이 질 때 그 서러움을 무엇으로서 달래리오. 죽향은 김삿갓의 욾는 이별의 시를 듣고서 옷소매로 얼굴을 감싸며 소리없이 흐느낀다.
"이제부터 어디로 가시옵니까?" "나는 원래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는 몸, 이제 헤여지면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 걸세." 죽향은 그말을 듣자, 설움이 복받쳐 올라 잠시 입술을 깨물다가, 이별의 시를 욾는다.
" 부디 평안히 가시옵소서 끝없이 머나먼 만리길을 하늘에 달이 없는 밤이면 외기러기 슬퍼 울으오리다." 평양기생 竹香(죽향)은 시와 그림에 뛰어난 조선시대 명기 평양감사 시절에 추사가 죽향의 매력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죽향 詩 <黃昏>은 그녀 그림과 함께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실버들 천만 가지 문 앞에 휘늘어져서 구름인 듯 인가(人家)를 볼 길 없더니 문득 목동이 피리를 불며 지나간다 강 위에 보슬비요 날도 저물어 가누나 千絲萬縷柳垂門 綠暗如雲不見村 忽有牧童吹笛過 一江烟雨自黃昏
墨竹圖 - 竹香 화접도 24.8×25.4cm 국립중앙박물관.,소장품
............그後,神仙이 된.,金삿갓............ 강진에서 용천사 거쳐 가지산 보림사까지, 보름 걸린 200리 어딘지는 모르지만 몸에 이상이 있어 걸음이 더뎌졌기 때문. 천하의 기운이 땅위에 내를 이루고 허공에 쌓여있다는 가지산
가지산의 정기를 온통 다 받는 위치에 있는 명찰 보림사 한 바퀴 둘러본 김삿갓은 풀밭에 누워 피로를 달래며 한탄. 김삿갓은 요양차 그곳을 찾아올 만큼 건강이 나빠져 있었다.
진주에서 우연히 옛 길동무 우국지사를 만나 그의 소개로 강진 안진사 댁에서 겨울을 지내고 신석우라는 초면의 선비를 만나 이곳까지 오게된 것.
김삿갓이 화순 동북면 신석우 집을 찾아갔을 때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신석우는 뒤안 초당에 거처를 마련해준뒤 후하게 대접.
다음날 신석우는 김삿갓의 요청에 따라 적벽강에서 놀잇배를 하나 빌려주었다.
하늘은 맑고 강바람은 시원한데, 절경은 가히 호남팔경 가운데 으뜸 베를 타고 사방을 둘러보니 선계(仙界). ‘아하, 여기가 내 안식처로는 적격이구나.’ 흔들리는 배에 누워 뭉게구름을 바라보는 김삿갓. 하늘과 구름은 30년전 영월을 떠날 때 그 하늘 그 구름 어느새, 세월이 흘러 죽음을 앞에 둔 노년이 되었단 말인가.
지나간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가장 먼저 떠오른., 강계 제일의 명기 추월 너무나 가슴이 아려와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김삿갓을 평생 섬기며 살고 싶어했던.,추월.
양양 산골 훈장의 딸 홍련과 보낸 하룻밤도 생생했다. 방랑길 첫 인연, 첫 경험인데도 운우지락을 안겨준 홍련 금강산 장안사 불영암에서 공허스님을 만나 시 짓기 내기 초면인데 백년지기처럼 뜻이 통하여 몇 달간 어울려 지낸 일
함흥기녀 소연을 만나 행복하기 그지없는 6개월
10년 만에 영월 본가에 들러 처음 본 둘째아들에게 익균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이내 방랑길에 올랐던 일. 개풍 진봉산에서 철쭉꽃을 꺾으려다 벼랑에서 떨어진 일.
천석사에서 요양을 하고 있을 때 반년 동안 간호해준 안산댁의 정성 곡산땅 어릴 적 살던 동네를 찾아 동무들과 겨울을 났던 일 평양갑부 임진사 댁에서 동기 삼월과 즐긴 가장 화끈했던 방사
객점을 하던 애비 일로 죽향을 만나게 되어 함께 한 일. 죽향이 부친상 중이라 살을 섞지 못했지만.,듬뿍 든 정. 그 자신도 모친상 중이라 죽향과 같은 처지였던 김삿갓.
홍성까지 내려가 어머니 부음을 확인 후.,인생무상 '몽중몽'이란 부여 객점에서 퇴기 연월과 지낸 닷새. 남정네 경험이 많아 온갖 기교로 음심을 돋워준 연월.
자신의 운명을 뒤바꾼 ., 백일장 시제
'정가산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논하고,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이를 정도였음을 통탄해보라'
가산군수 정가산은 홍경래 반란군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 선천방어사 김익순은 홍경래 반란군이 쳐들어오자 즉석에서 항복 이듬해 봄, 홍경래 난이 평정되자 김익순은 역적 낙인이 찍혀 처형
김병연은 평소 정가산을 '천고의 빛나는 충신' 이라고 존경 김익순을 '백번 죽여도 아깝지 않은 만고의 비겁자'라고 경멸 김익순을 탄핵하는 글을 거침없이 써내려가 장원을 차지한 것.
그는 술한잔 걸치고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자랑하자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숨겨온 집안 내력을 가르쳐 주시니 반역자 김익순이 바로 자기 자신 김병연의 할어버지였던 것.
반역자는 삼대를 멸하라는 법대로 죽어 마땅한 김병연 어머니가 세 아들을 데리고 숨어 살아 겨우 목숨을 연명. 그러나, 살아있어도 죽은 목숨이나 다를바 없는 구차한 삶.
김병연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죽을 생각도 하며 울기도 하다가 그의 아내와 낳은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와 홀어머니를 뒤로한채 방랑의 길을 떠나 죽음에 이르게 된 것.
鳥巢獸巢皆有居 새도 짐승도 제 집이 있건만 顧我平生獨自傷 나는 한평생 홀로 슬프게 살아왔네. 芒鞋竹杖路千里 짚신에 지팡이 짚고 천리길을 떠돌며 水性雲心家中方 물처럼 구름처럼 가는 곳이 내 집일세.
尤人不可怨天難 사람도 하늘도 원망할 일은 아니로되 歲暮悲懷餘寸腸 매년 해가 저물 때면 홀로 슬퍼했다네.
시를 다 지었을 즈음 의식이 가물가물해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김삿갓은 마음이 환해지는 듯한., 황홀함. 이승의 의식이 단절된 순간에 마지막 짧은 시 한 구절.
乘彼白雲 저 흰 구름을 타고 羽化登仙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삼천리 방방곡곡을 두루 살펴다니며 시를 남기고 전라도 화순.,동북 적벽강 흔들리는 배 위에 누워 기구했던 한평생을 회고하며 세상을 떠난.,김삿갓 그의 시신은 차남인 익균이 거두어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노루목에 안장한다. 강화도령 철종 14년.,1863,음력 3,29 (향년 57세) ................................................................ 김삿갓 유적지(강원도 영월군 하동리 와석리)
방랑 김삿갓 본명 김병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