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名之可憐色可憐
기생 가련의 집은 만세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기슭에 있었다. 집은 큰 편이 아니었지만 뜰에는 매화가무도 두 세 그루 있어서 매우 아담한 인상이었다. 방안으로 들어오니 문갑 위에는 李太白과 王維의 시집이 놓여 있고, 벽에는 왕유의 春桂問答이라는 족자가 걸려 있었다.
봄 계수나무에게 묻노니
복사꽃 오얏꽃 한창 향기로워
가는 곳마다 봄빛이 가득한데
그대만은 왜 꽃이 없는가.
問春桂
桃李正芳菲
年光隨處滿
何事獨無花
계수나무 대답하되
봄의 그 꽃들 어찌 오래 갈 건가
낙엽이 우수수 가을이 되면
나 홀로 꽃 필 것을 그대 모르는가.
春桂答
春花詎幾久
風霜搖落時
獨秀君不知
김삿갓은 족자를 보고 가련의 심성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술상을 들고 들어온 가련에게 다음과 같은 즉흥시를 들려주었다.
이름이 가련이오 얼굴도 가련한데
가련은 마음조차 또한 가련하구나.
名之可憐色可憐
可憐之心亦可憐
가련은 자기는 시를 짓지는 못한다면서 왕유의 送春詞라는 시를 낭랑한 목소리로 읊어 보인
고 나서 술을 가득 부어 공손히 권한다.
사람은 날마다 헛되이 늙어 가는데
봄은 해마다 어김없이 돌아오누나.
마음껏 즐기세 단지에 술이 있으니
꽃이 진다고 아까워해서 무엇하리.
日日人空老
年年春再歸
相歡有尊酒
不用惜花飛
술과 시와 미색에 취한 김삿갓은 흥이 도도하여 역시 왕유의 시를 한 수 읊어 화답한다.
말에서 내려 술을 권하며
어디로 가느냐고 그대에게 물으니
세상 일 모두 뜻과 같지 않아
남산에 돌아가 누우려 한다네.
下馬勸君酒
問君何所之
君言不得意
歸臥南山睡
이처럼 두 사람은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주거니 받거니 하며 끝없이 마시다가 김삿갓은 마침내 그 자리에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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