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김삿갓 (43) 靑松은 듬성듬성 立이요

수돌이. 2016. 8. 18. 20:09

43. 靑松은 듬성듬성 立이요


九天閣에서 시 한 수를 읊고 내려온 김삿갓은 저 멀리 잔디밭 위에 네 사람의 늙은이가 한 기생을 데리고 술을 마시고 있는 광경을 발견하고 술 생각이 간절하여 염치 불구하고 달려가 술 한 잔을 청했다.


젊은 기생을 희롱하며 술잔을 기울이던 늙은이들은 그의 행색을 훑어보고는 점잔은 어른들이 詩會를 하는 자리에 함부로 끼어들어 破興을 하느냐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그 일갈에 순순히 물러설 김삿갓도 아니었고 그들의 작태를 보아 선비다운 점을 찾아 볼 수도 없었다.


내 비록 四書三經은 못 읽었어도 千字文은 읽었으니 漢文으로 못하면 諺文을 섞어서라도 한 수 짖겠다며 술부터 달라고 너스레를 떤다. 늙은이들은 언문도 글이냐고 일축했지만 기생이 재미있다는 듯이 늙은이들의 제지를 뿌리치고 술을 거듭 따르며 언문 시를 한번 들어보자고 조른다.


靑松은 듬성듬성 立이요

人間은 여기 저기 有라

所謂 어뚝삐뚝 客이

平生 쓰나 다나 酒라


머리가 다 빠진 늙은이들이 시를 짓는답시고 허구한 날 모여서 음담패설이나 하고 술이나 퍼 마시는 행태를 은연중에 비꼬아 준 것이었으나 늙은이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코웃음만 치는데 기생만이 재미있다는 듯이 배꼽을 잡는 것이었다.


김삿갓이 술이 거나해지긴 했지만 좌중을 둘러봐도 시를 화답할만한 위인은 없는 듯 하여 짐짓 일어서려 하는데 元生員이라는 이가 '술을 얻어먹었으면 술값을 하고 가야지 그까짓 언문시를 시라고 던져 놓고 가려느냐.' 고 채근하여 어쩔 수 없이 다시 한 수를 내리 갈겼다.


해가 뜨니 원숭이가 들판에 기어 나고

고양이가 지나가니 쥐가 모두 죽는다.

황혼이 되니 모기가 처마 밑에 모이고

밤이 오니 벼룩이 자리에서 쏘아 대누나.

日出猿生原(원생원)

猫過鼠盡死(서진사)

黃昏蚊簷至(문첨지)

夜來蚤席射(조석사)


네 명의 늙은이들이 서로 불러대는 별칭을 모두 인용하여 원숭이, 쥐, 모기, 벼룩과 같은 못난이들이라고 비꼬아 준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김삿갓은 시를 써 놓고는 간략한 인사를 남기고 기생의 만류를 뿌리치며 유유히 걸어 내려오면서 시를 읽어 보고 노발대발할 그들의 모습을 그려 보며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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