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김삿갓(91) 장기

수돌이. 2016. 8. 23. 16:43

 

91. 장 기


개성을 벗어나 북으로 올라가니 바로 황해도 땅이다. 황해도 曲山의 천동마을이 김삿갓의 마음의 고향이다.

할아버지 金益淳이 대역죄를 입어 가문이 파멸될 때 어머니의 등에 업혀 머슴의 고향이던 곡산의 천동마을로 숨어들었던 것이다.

그 이전의 서울에서 산 기억은 너무 어려서 나지 않고, 그 이후로도 영월로 갈 때까지 양주, 광주 등지를 전전했었지만

기간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별로 기억이 없으며, 오직 황해도 곡산의 천동마을만이 기억에 생생하여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천동마을에는 본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꺾쇠, 왕눈이, 개똥이 하고 별명으로 부르던 친구들은 산과 들로 싸다니며 뛰놀기도 했고,

몇 해 동안 글방에서 글을 함께 읽었으므로 그리운 정이 간절하여 황해도에 들어서자 먼저 천동마을부터 찾았는데

코흘리개 옛 친구들은 모두 장년이 되어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동리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방랑길에 나선이래. 처음으로 자기의 본명을 밝히고 옛이야기를 하자 모두들 반갑게 환대하면서 이집 저집에서 묵어가라고 붙잡는 바람에

한 달 여를 천동마을에 묵었다. 어릴 적 친구들과 어울려 장기도 두고 바둑도 두면서 고향에 온 것처럼 편안한 세월을 보내다가

어느 날 김삿갓은 「장기」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즉흥시 한 수를 읊었다.


술 잘하고 시 잘 짖는 친구끼리 모여 앉아

방안에서 한 바탕 싸움판이 벌어졌네.

포가 훨훨 날아 넘어 위세가 웅장하나

상이 딱 버티고 있어 그 진세도 만만찮다.

酒老詩豪意氣同

戰場方設一堂中

飛包越處軍威壯

猛象前衛陣勢雄


차가 바로 달려 졸을 먼저 잡아먹고

모로 가는 날랜 말이 궁을 항상 엿본다.

이 말 저 말 잡아먹고 연달아 장 부르니

사 둘만으로는 당해내기 어렵구나.

直走輕車先犯卒

橫行駿馬每窺宮

殘兵散盡連呼將

二士難存一局空


장기가 막판에 몰려 존망이 경각에 달려있는 위급한 상황을 절묘하게 표현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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