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산 이름은 송악인데
개성시내 곳곳의 유적을 안내하면서 자기 집에 유숙케 하는 선비의 친절은 고맙지만 가난해 보이는 선비 집에 여러 날 머물러 있을 수도 없어서
만류를 무릅쓰고 작별을 고하고 나왔다. 그러나 어제 보았던 단풍으로 곱게 물들은 그 松嶽山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千紫萬紅을 한 눈으로 바라보며 송악산을 서서히 올라갔다 내려오니 해는 이미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개성에서 하룻밤을 더 자고 가야겠기에 이집 저집을 찾아다녔지만 모두 거절이다. 한 집은 여자만 있어서 안 된다 하고,
또 한 집은 과객을 재울 방이 없다고 하더니 또 다른 집은 땔 나무가 없어서 안 된다고 한다. 원 이런 놈의 인심이 어디 있단 말인가.
김삿갓은 울분을 토로하면서 다음과 같은 즉흥시를 읊었다.
읍 이름이 개성이니 문을 닫지 말아라.
산 이름은 송악인데 왜 나무가 없다 하는가.
저녁에 손님을 쫓는 것은 인사가 아닌데
예의 바른 나라에서 그대만이 진 나라 놈이구나.
邑號開城莫閉門
山名松嶽豈無薪
黃昏逐客非人事
禮儀東方子獨秦
시 한수를 읊고 나니 울분이 한결 풀렸다. 그러나 그것으로 잠자리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잠자리를 해결하지 못할 때에는 어느 절간을 찾아 갈 수밖에 없는데 어떤 절이 어느 산 구석에 박혀 있는지 그것조차 알 길이 없지 않는가.
무턱대고 산으로 오르려는데 저 멀리서 나무꾼의 노랫소리가 들여온다.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나무꾼의 노래를 들으면서 다시 시 한 수를 읊는다.
오두막 저녁밥 짖는 연기 사라지고
해 저물어 새는 깃으로 돌아가는데
나무꾼은 하늘가 밝은 달을 바라보고
노래를 부르며 청산을 내려오네.
茅屋炊煙歇
日暮飛鳥還
樵客見明月
長歌下靑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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