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종이』
범어스님은 김삿갓이 누어있는 기회에 시를 배우려고 틈이 날 때마다 가르쳐 달라고 졸라 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종이 한 장을 들어 보이며 지난번에는 창구멍을 막는 시를 지으셨으니 이번에는 종이에 대한 시를 한 수 지어 달라고 했다.
김삿갓은 범어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 다음과 같이 지어 주었다.
넓적한 등전지는 본래 나무로 만든 물건
펼쳐 놓고 글을 쓰면 글씨가 가볍도다.
천권 책을 모두 읽고 차곡차곡 쌓으면
그 높이 하늘 아래 만리로 뻗으리라.
闊面藤霜本質情
鋪來當硯點毫輕
耽看蒼錄千編積
誕此靑天萬里橫
화려한 족자에 쓰인 명성 모두가 후진이요
문방 족속 가운데 종이가 홀로 선생이라.
집집마다 창을 발라 방안을 밝게 하고
종이로 된 책으로 사람들의 길을 깨우치오.
華軸僉名皆後進
文房列座獨先生
家家資爾糊蒼白
永使圖書照眼明
범어스님은 이 시를 세 번 네 번 읽어보고 감탄을 마지아니하였다.
종이의 효용성을 종합적이고도 익살스럽게 그려 놓은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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