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요강」
황진이 무덤 찾기를 단념한 김삿갓은 고려의 도읍지 松都로 가던 길에 철쭉꽃이 많기로 유명한 進鳳山에 올라
지금 한창 제철을 만나 흠뻑 피어 있을 철쭉꽃을 보기로 했다. 자고로 鳳山躑躅이라 하여 송도팔경의 하나라더니 과연 허언이 아니었다.
꽃에 취한 김삿갓은 삼국유사의 獻花歌에 나오는 고사처럼 水路夫人에게라도 받치려는 듯 벼랑에 핀 꽃을 겪으려다가
그만 실족하여 발목을 심하게 삐고 말았다. 아픈 다리를 끌고 내려오다가 다행히 한 스님을 만나 泉石寺라는 산사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다.
이 절의 주지 梵魚스님은 김삿갓을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작년에 금강산에 갔다가 空虛스님으로부터 삿갓선생의 이야기를 들었노라며
글짓기 내기를 청하기도 하고 시문답을 하기도 하면서 각별한 대접을 하였다. 밤이 되면 불편한 다리를 염려하여 방에 요강까지 들여 주었다.
김삿갓은 지금까지 요강 같은 것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가져 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다리를 다치고 보니 요강처럼 요긴한 물건도 없고,
범어스님의 친절이 하도 고마워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음과 같은 익살스러운 시 한 편을 지었다.
네 덕분에 한밤중에 드나들지 않게 되고
누운 곳 가까이에 이웃해 친근하구나.
취객은 너를 끌어당겨 단정히 무릎을 꿇고
어여쁜 아가씨 타고 앉아 옷 젖을까 벌이누나.
賴渠深夜不煩扉
令作團隣臥處圍
醉客持來端膝跪
態娥挾坐惜衣收
단단하게 생긴 모습 구리 산 형국이요
오줌 눌 때 그 소리는 폭포수 같도다.
가장 요긴한 때는 비바람 치는 새벽녘이니
느긋한 성품 길러 사람을 살지게 하는구나.
堅剛做體銅山局
灑落傳聲練瀑飛
最是功多風雨曉
偸閑養性使人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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