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김삿갓(68) 넘치는 이 술잔 사양치 말게

수돌이. 2016. 8. 23. 15:39

 

68. 넘치는 이 술잔 사양치 말게


"천하일색 양귀비도 한 줌 흙을 남겼을 뿐인데 무엇을 망설이느냐" 는 유혹의 시를 받아 읽고 충격을 받아 마음이 흔들렸는지, 주모는 오래도록 망설인 끝에 술상을 다시 보아 들고 김삿갓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결심한 바가 있었던지 의외의 제안을 해 오는 것이 아닌가. "제가 삿갓 어른을 모시되 이부자리를 펴놓는 것만으로 대신하면 어떻겠습니까?" 이부자리만 펴놓고 살을 섞는 짓만은 하지 말자는 뜻이었다.


김삿갓은 여인의 고고한 뜻을 알아채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좋도록 하세그려. 자고로 志不可滿이요 樂不可極이라 했으니 이부자리만 폈으면 됐지, 구태여 그 속에 들어가 금수와 같은 짓을 할 것까지야 없지 않겠나."


옛날의 高士와 名妓들은 서로 뜻이 맞으면 이부자리만 펴놓고 실지로 살을 섞지는 않는 일이 더러는 있었기에 김삿갓도 흔쾌히 응낙하였던 것이다. 여인은 얼굴을 붉히며 조용히 일어나서 원앙금침을 정성스럽게 펴놓았다.


이 날 밤 두 남녀는 이부자리 옆에 앉아 술만 나누었을 뿐, 이불 속으로 들어갈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애정도 없이 살을 섞으면 그것은 단순한 야합이지 않는가. 김삿갓은 주모의 亡夫에 대한 의리를 높이 평가하고 주모는 김삿갓의 인품을 소중히 여겨 주고 있었다.


"내가 勸酒詩를 한 수 읊어 줄 테니 자네도 한잔 마시게." 김삿갓은 여인에게 술잔을 내밀며 옛 시 한 수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그대에게 한잔 술 권하노니

넘치는 이 술잔 사양치 말게

꽃이 피면 비바람이 많고

사람사리에는 이별도 많다네.

勸君一盃酒

滿酌不須辭

花發多風雨

人生足別離


여인은 술잔을 들고 눈물을 삼키며 "저도 옛 시로써 화답을 올리겠습니다." 하더니 다음과 같은 시를 떨리는 목소리로 읊어 보이는 것이었다.


임도 나와 헤어지며 눈물 지우고

저 역시 울면서 헤어지려오.

그리운 눈물이 비가 되어서

정든 님 옷자락에 뿌려 지이다.

君垂別妾淚

妾亦淚含離

願作陽臺雨

更灑郎君衣


실로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심야의 이별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