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影浸綠水衣無濕
立石峰에서의 시 짖기 내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空虛스님은 김삿갓을 환희에 넘친 눈으로 바라보며 다시 한 수를 읊는다.
그림자가 푸른 물에 잠겼건만 옷은 젖지 않고
影浸綠水衣無濕
공허스님의 시에는 禪味가 넘쳐흘렀다. 그림자가 물에 잠겨도 옷은 젖지 않는다는 말은 그 얼마나 기발한 詩想인가. 그러나 김삿갓의 화답도 그에 못지않게 멋이 들었다.
꿈에 청산을 누볐건만 다리는 고달프지 않네.
夢踏靑山脚不苦
말이 떨어지자마자 척척 받아 넘기는 김삿갓의 비상한 재주에 공허스님은 三歎四歎을 마지않으며 또 한 수를 읊는다.
청산을 사고 보니 구름은 절로 얻은 셈이고
靑山買得雲空得
김삿갓의 거침없는 화답.
맑은 물가에 오니 물고기가 절로 따라 오네.
白水臨來魚自來
공허스님은 돌 한 덩어리를 굴리며 다시 읊는다.
산에서 돌을 굴리니 천년 만에야 땅에 닿겠고
石轉千年方到地
김삿갓이 즉석에서 대구한다.
산이 한 자만 더 높으면 하늘에 닿았으리.
峰高一尺敢摩天
공허스님은 거기까지 어울리다가 感興을 억제할 길 없는지 김삿갓의 손을 덥석 잡는다. "삿갓선생! 우리가 이제야 만난 것이 너무 늦었어요. 허나 내 오늘 이런 기쁨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술을 좀 준비해 가지고 왔소이다." 하면서 바랑 속에서 술과 안주를 내어놓는다.
그래서 김삿갓은 입석봉 상상봉에서 삼라만상을 굽어보며 뜻하지 못했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스님이 권하는 대로 몇 잔을 거듭 마신 김삿갓은 흥에 겨워 古詩 한 수를 읊었다.
장부는 반드시 지기를 만나게 되는 법
한 세상 유유히 군말 없이 살고 지고.
丈夫會應有知己
世上悠悠安足論
이 시는 옛날 시인 張謂가 喬林禪師라는 高僧을 만났을 때의 기쁨을 노래한 시였다. 공허스님은 그 시의 뜻을 대뜸 알아듣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고 行雲流水와 같은 김삿갓의 人生行脚이 오히려 부러운 듯 그 역시 張謂의 시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화답하는 것이었다.
술이 있으면 얼추 취하는 그대가 부럽고
돈이 없어도 근심 안 하는 그대가 부럽소.
羨君有酒能便醉
羨君無錢能不憂
그야말로 변죽을 두드리면 복판이 울리는 酬酌이었다. 이날 밤 그들은 달을 바라보며 별을 바라보며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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