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惰 婦
김삿갓이 어느 날 두메산골 오두막집에서 또 하루를 묵었다. 그런데 그 집 주인은 선량하기 그지없었으나 젊은 아낙은 잠깐 보아도 게으르고 방자하여 주부다운 점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린 채 낮잠을 자고 있는 여인은 빨래를 언제 해 입었는지 옷에서는 땟국이 흐르고 윗목에 놓인 베틀에는 먼지가 뽀얗다.
남편의 성화에 마지못해 부엌에 들어간 아낙은 그릇 깨는 소리만 요란하게 내더니 통옥수수 밥에 짠지 몇 쪽을 들이밀고는 건너 마을 굿 구경을 가서 다음날 아침이 되어도 돌아올 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조반은 주인이 직접 지었는데 밥도 밥이려니와 반찬도 어제 저녁보다는 훨씬 좋았다. 아침을 얻어먹고 주인마누라는 만나 보지도 못한 채 길을 나선 김삿갓은 惰婦라는 이름의 시를 다음과 같이 남겼다.
병도 근심도 없고 목욕도 빨래도 안하여
십 년 전 시집올 때 옷을 그냥 입고 있네.
어린것 젖 물리고 낮잠 자기가 일이요
속바지 이 잡느라 처마 밑 햇빛만 좋아하네.
無病無憂洗浴稀
十年猶着嫁時衣
乳連褓兒謀午睡
手拾裙蝨愛簷暉
걸핏하면 부엌에 그릇 깨기 일쑤요
베 짜기가 지겨워 머리를 긁다가도
이웃집 굿하는 소리만 들려오면
사립문 제쳐놓고 나는 듯이 달려가네.
動身便碎廚中器
搔首愁看壁上機
忽問隣家神賽慰
柴門半掩走如飛
게으른 여인을 소재로 하여 시를 읊조리다 보니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 오는데도 힘든 줄을 몰랐다. 모든 사람들의 생활양태가 제각기 천태만상이어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모두가 재미있어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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