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利川의 郭風憲영감
여주 神勒寺를 떠난 김삿갓은 서울을 향하여 가다가 利川의 어느 선비집에서 며칠을 묵었다. 길에서 한 선비를 만나 따라 갔으나 사랑에는 그의 아버지 84세의 노인이 홀로 앉아 있었다.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노인을 만났지만 이토록 장수한 노인을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젊어서는 鄕所職의 하나인 風憲 벼슬까지 했다는 이 노인은 이제는 다리에 힘이 없어 제다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눈이 어둡고 귀가 멀어 잘 보고 듣지도 못했다. 그러면서도 글을 읽던 버릇만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黃帝內經(중국의 가장 오래된 의학서)을 읽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오히려 처량하게 보였다.
귀가 밝으면 심심풀이로 글 토론이라도 해 보련만 귀가 절벽이니 담화도 잘 나누지 못했다. 김삿갓은 저녁을 먹은 후에 호롱불 밑에 혼자 멍하니 앉아 있기가 무료하여 까딱까딱 졸고 있는 곽풍헌영감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은 즉흥시 한 수를 지었다.
여든하고도 네 해가 더 지났으니
사람도 귀신도 아니요 또한 신선도 아니로구나.
다리 힘이 없어 걸핏하면 넘어지고
눈은 어둡고 정신이 없어 앉으면 졸기만 하네.
八十年加又四年
非人非鬼亦非仙
脚無筋力行常蹶
眼乏精神坐輒眠
생각하고 말함이 모두가 망령이여
한 가닥 생각만이 간신히 남았구나.
희로애락마저 모두 흐리멍덩하면서
때때로 내경편을 읽는 것이 고작이네.
思慮言語皆妄靈
猶將一縷氣之線
悲哀歡樂總茫然
時閱黃帝內經篇
다음 날도 젊은 선비가 아버님과 말벗이나 하라면서 붙잡았지만 귀머거리 노인하고 대화가 통할 리 없었다. 그래서 말 대신 필담을 시도해 보았다. 生存交友多有乎(살아 계시는 친구 분들이 많이 있습니까?) 라고 써서 물어 보았다. 한 참 드려다 보던 노인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다들 가고 혼자만 남았노라고 했다.
나이가 먹으면 먹을 것 생각 밖에 없는지, 금방 숟갈을 놓고서도 무엇인가 또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는 또 남모르는 고통이 하나 있었으니 그 것은 며느리가 업고 있던 자기 손자를 '아버님 심심하실 테니 같이 노세요.' 하면서 갖다 맡기는 것이었다. 이러한 광경들을 보면서 인생무상을 느낀 김삿갓은 다시 시한수를 남기고 휘적휘적 길을 나섰다.
오복 중에 수가 제일이라고 누가 말했는가.
장수는 욕이라고 말한 요임금은 신이로구나
옛 친구는 모두가 세상을 떠나 버리고
젊은이들은 낯이 설어 담을 쌓았네.
五福誰云一曰壽
堯言多辱知如神
舊交皆是歸山客
新少無端隔世人
힘이 없어 움직일 땐 앓는 소리를 하고
위장이 허약하니 맛있는 음식만 생각하네.
아이 보기 고되다는 속사정도 모르고
며느리 걸핏하면 어린아이와 놀라네.
筋力衰耗聲似痛
胃腸虛乏味思珍
內情不識看兒苦
謂我浪遊抱送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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