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김삿갓(11) 許多韻字何呼覓

수돌이. 2016. 7. 28. 20:15

11. 許多韻字何呼覓


김삿갓은 날이 저물어 다시 산골의 한 서당을 찾아가서 하룻밤 유하기를 청했다. 그러나 제법 덩그런 집에서 열여덟 살의 어린 애첩까지 더리고 산다는 70고령의 老訓長은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자네 글을 좀 읽었는가?

예, 많이는 못 읽었지만 조금은 배웠습니다.

그러면 내가 韻자를 부를 것이니 詩를 한수 지어 보게, 잘 지으면 재워줄 것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자고 가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게.

예, 선생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김삿갓은 겨우 글방사랑 윗목에 자리를 얻어 앉았고, 훈장은 거만하게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韻자를 한꺼번에 부르지 않고 한 구절을 지을 때마다 한 자씩 따로따로 불러 줄 테니 그리 알게.”하더니 첫 번째 운자를 ‘찾을멱(覓)’ 하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覓이라는 글자는 詩에서는 좀처럼 쓰지 않는 僻字임에도 불구하고 김삿갓을 골탕 먹여 내쫓으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일단 운자를 받은 김삿갓은 覓자를 본래의 뜻인 動詞로 써서는 시를 지을 수 없음을 간파하고 名詞로 바꾸는 재치를 발휘하여 선뜻 이렇게 읊었다.

허구 많은 운자 중에서 하필이면 멱자란 말이오.

許多韻字何呼覓


첫 구절은 그것으로 시험을 통과한 셈이었다. 그런데 훈장은 또 다시 ‘멱’하고 똑 같은 글자를 두 번째 운자로 부르는 것이었다. 운자라는 것은 본시 같은 글자를 거듭 쓰는 것이 아니요, 훈장이 그 만한 법칙을 모를 리 없지만 기어이 골탕을 먹여 보려나 보다.

아까도 멱자가 어려웠는데 또 멱자란 말이오.

彼覓有難況此覓


김삿갓은 이번에도 動詞를 名詞로 바꾸어 간단히 처리 했고, 그 기발한 발상과 재치에 놀란 훈장은 그래도 자기의 체면을 세워 보려고 운자가 필요치 않은 세 번째 구절에도 굳이 운자를 달으라면서 다시 ‘멱’하고 부른다.

하룻밤 자는 것이 오직 멱자에 달렸구나.

一夜宿寢懸於覓


이쯤 되면 훈장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허나 세 번을 내리 멱자만 부른 마당에 이제 와서 어찌 하겠는가. 훈장은 또 다시 멱자를 불렀고 김삿갓은 은근히 화가 나서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시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산골 훈장이 아는 글자는 오직 멱 자 뿐이구나.

山村訓長但知覓


참으로 김삿갓이 아니고서는 해 낼 수 없는 놀라운 재주였다. 이에 놀란 훈장도 그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벌떡 일어나 김삿갓의 손을 잡고 아랫목으로 내려와 詩才를 칭찬하면서 저녁에는 애첩에게 술상까지 보아오게 하여 귀한 손님으로서의 대접을 극진히 하였다.


술을 마시면서도 김삿갓은 젊은 여인의 숨겨진 아픔을 엿본 것만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70고령의 영감님과 열여덟 살의 앳된 소실, 아무리 보아도 어울리는 남녀 간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생각하면 여인의 불행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이 재물만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문득 醒睡稗說이라는 옛 책에 나오는 老郞幼婦라는 시가 머리에 떠오른다. 어느 익살꾸러기 시인이 일흔 두 살의 신랑과 열여섯 살의 신부를 배꽃과 해당화에 비유하면서 신방 풍경을 읊은 戱詩이다.

신부는 열여섯, 신랑은 일흔두 살

파뿌리 흰 머리가 붉은 단장을 만났네.

어느 날 밤 홀연 봄바람이 일더니

배꽃이 날아와 해당화를 누르누나.

二八佳人八九節

蕭蕭白髮對紅粧

忽然一夜春風起

吹送梨花壓海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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