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열(김공은열묘지명)
지금에 계림군 김 균으로부터 평장사공에 이르기까지 바로 만 12대수라고 한 것은 앞에 말한 소목과 祖 孫이라는 말이 이에 가깝지 않느냐. 지금 평장사공에서 경순왕까지 연대가 이렇게 가까운 것을 알만한데 후손들이 알지 못하고 연대가 멀다고 하며 대수가 탈락되었다는 전해 내려오는 말이 이와 같으니 문서에 증거 할 것이 없어서 한탄스러 울 따름이다. 또는 고려사 열전을 참고하건 데 명종 때에 영고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동성 김인경의 부친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연대가 어긋나므로 혹시 두 사람의 같은 것이라고 의심할만하다. 족보계통은 중대한 일이므로 애초에 신중하여야 하겠으니 기록된 것이 이렇게 모순되는 것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으며 나중에 족질 휘 여의 가승(한집안의 기록)을 보건 데 휘 순웅이 실로 여러 일가가 전하는 것이나 그러나 특히 이르기를 순웅의 아들 인위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진실로 여러 일가가 전하는 것이나 그러나 특히 우리 집에서는 알지 못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주석과 아울러 기록해 놓으니 평장사공 위에 이런 장군공의 1대수가 있다면 여기로부터 경순왕 년대에 소급해보면 더욱 가까운 것이니 여기에 5대수라는 것은 아직 부록으로 하여서 후일에 다시 참고할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평장사공 23세손 덕운은 삼가 기록함.
임진년 족보를 살피건대 경순왕 이하 족보 탈락한 것은 다만 여러 기록에 어긋나는
말을 증거로 의문점 그대로 남겨 두었는데 정조임금 갑진년에 시중 공소보공의 지석을
발견하여 비로소 선대계통을 알았으므로 지금에 구 족보의 기록을 수정하였으며 경헌공은 추가로 기록하여 구 족보에서 일가 덕운이 기록한 것을 작은 글씨 두 줄로 아래에 써서
참고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