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月下獨酌(월하독작) - 李太白
花下一壺酒(화하일호주) 꽃 아래 한 병의 술을 놓고,
獨酌無相親(독작무상친) 짝 없이 홀로 술잔을 드네.
擧盃邀明月(거배요명월) 잔 들어 달님을 맞으니,
對影成三人(대영성삼인) 그림자까지 합하여 셋이어라.
月旣不解飮(월기불해음) 달님은 본디 술을 못하고,
影徒隨我身(영도수아신) 그림자는 그저 나 하는 대로 할 뿐,
暫伴月將影(잠반월장영) 잠시 달과 그림자를 벗하며,
行樂須及春(행락수급춘) 봄 밤을 맘껏 즐기네.
我歌月徘徊(아가월배회) 내 노래에 달님이 서성거리고,
我舞影凌亂(아무영능란) 내 춤에 그림자가 어지러이 흔들리네.
醒時同交歡(성시동교환) 취하기 전엔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醉後各分散(취후각분산) 취하면 각기 흩어지네.
永結無情遊(영결무정유) 속세를 떠난 맑은 사귐, 길이 맺고자,
相期邈雲漢(상기막운한) 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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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달빛 아래에서 홀로 술잔을 들며 달과 그림자를 벗으로하여 "무정유(無情遊)"의 즐거움을 누린 李白이 시선(詩仙)다운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지은 시이다.
속세의 이해나 인간의ㅡ잡다한 감정이 배제된 비인정(非人情),무정(無情)의 사귐으로 즐거움을 만끽하는 경지를 "풍류(風流)"라고 한다. 晉代(진대)의 풍류는 , 자연 속에서 자신의 개성을 해방하는 기쁨이다. 晉의 도연명은 〈잡시(雜詩)〉에서 " 말을 걸려해도 대답해 줄 사람이 없으니, 잔 들어 외로운 그림자에 권하노라(欲言無子和 揮盃勸孤影-욕언무자화 휘배권고영)" 라고 하여 ,자신의 고독한 심경을 토로(吐露)했다.
본편에 "擧盃邀明月 對月成三人"이라 한 것도 그와 같은 풍치(風致)라 할 수 있다. "我歌月徘徊"의 句는, 노래를 부르는 李白의 몸이 흔들리기 때문에 허공에 있는 달이 배회하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을 참으로 자연스럽고 재미잇게 묘사한 것이다. 宋의 소동파(蘇東坡)가 〈적벽부(赤壁賦)〉에서 " 잔 들어 객(客)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읊조리고 요조(窈窕)의 장(章)을 노래했다.. 이윽고 동산 위에 둥근 달이 솟더니 남두성과 견우성 사이로 천천히 떠올랐다.(擧酒屬客 誦明月之詩 歌窈窕之章 少焉月出於東山之上 徘徊於斗牛之間)"라고 한 것도 본편의 표현법을 본뜬 것이라 할 수 있다.
"永結無情遊. 相期邈雲漢"의 두 句는 본편(本篇)의 본의(本意)를 나타낸 것으로, 시선(詩仙) 李白의 표표(飄飄)한 시풍(詩風)이 엿보이는 명구(名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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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太白 (701-762)
백(白), 자(字)는 太白, 호(號)는 靑蓮居士(청련거사), 광한(廣漢:四川)사람. 성당(盛唐)의 시인이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가 장경성(長庚星:太白星)을 꿈에 보고 그를 낳았으므로 太白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 자신 스스로"농서( 西)의 포의(布衣)"라 칭하고 있다. 10세에 이미 시서(詩書)에 통하고 백가(百家)의 서(書)를 읽었으며, 좀 더 성장해서는 부(賦)를 잘 지었다.검술(劍術)을 좋아하여 직접 몇 사람을 참(斬)한 일도 있다.
천보(天寶) 연간(年間) 초에, 하지장(賀知章)이 현종(玄宗)에게 李白의 일을 이야기하여, 조칙(詔勅)에 의해 한림원(翰林院)에서 일하게 되었다. 현종은 그의 재능을 몹시 사랑하엿다. 그러나 천자의 명령으로 이백의 신을 벗겨주게 되었던 고역사(高力士)가 이백을 미워하여 양귀비(楊貴妃)에게 참언을 했으므로, 이백은 스스로 물러났다.
그 때부터 이백은 천하를 주유(周遊)하면서 시와 술로서 마음을 달랬다. 시성(詩聖) 두보(杜甫)와는 절친한 시우(詩友)였다. 그의 시는 "천마(天馬)가 하늘을 나는 것 같다."고 형용된다. 표표(飄飄)한 사상, 청신(淸新)하고 화려한 사구(辭句), 자유분방한 천재적인 시풍과 그 인품에 일종의 선풍(仙風)이 있었으므로 시선(詩仙)이라 일컬어졌다. 하지장이 이백을 가리켜 〔적선(謫仙): 하늘에서 죄를 지어 하계로 쫓겨 내려온 신선〕이라 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다. 
돛단배 걸터앉아 술 마시며 시를 읊었던 이태백이 호수에 비친 달을
따려 했다가 물에 퐁당 했다는 항주의 서호의 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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